2026년 5월 중앙아시아 사막 한복판에서 한국산 고속열차가 첫 손님을 태웠습니다. 타슈켄트에서 히바까지 1,020km, 최고 시속 250km로 달리는 이 열차의 심장부에는 이름도 없는 국내 협력사 600곳의 부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30년 전 프랑스 공장에서 칸막이 앞에 서야 했던 나라가 이제는 그 스승을 사막 수주전에서 꺾고 우즈베키스탄까지 질주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고속철도에 한국이 실제 수주 가능성이 있는지와 현대로템이 우즈베키스탄 수주에서 일본을 이긴 결정적인 이유 등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글 하단에 정리하였으니, 읽어 보시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기술이전 계약은 껍데기 도면만 넘겨받은 반쪽짜리
명절 전날 서울역 광장에 밤새 줄을 서본 기억이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표를 기적처럼 구해서 통로 바닥에 신문지 깔고 네 시간 반을 내려가던 그 시절, 그 열차조차 우리 기술로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1969년 특급열차 관광호의 기관차는 미국산, 객차는 일본산이었습니다. 손으로 만든 건 단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죠.
1989년,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결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고속철도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세계에 딱 셋뿐이었습니다. 일본의 신칸센, 프랑스의 TGV(Train à Grande Vitesse, 고속열차), 독일의 ICE(InterCityExpress, 도시 간 고속열차). 한국은 이 세 나라에 제안서를 던지면서 완성품이 아닌 제조 기술까지 통째로 넘기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결과적으로 1994년 프랑스와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1점 차이의 승부였습니다. 프랑스가 이긴 결정적인 이유는 기술 독자 개발 시 별도 라이선스 비용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조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대목에서 주목한 건 프랑스의 속셈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그 기술을 진짜로 소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음 세대로 넘어가던 시점의 기술을, 어차피 따라오지 못할 나라에 선심 쓰듯 던져준 거였죠.
현실은 더 냉혹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 공장에 파견된 우리 엔지니어들이 받은 건 차체 치수나 뼈대 규격 같은 껍데기 정보뿐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이미 알루미늄 차체로 넘어가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무거운 강철 차체 도면만 넘겨줬습니다. 알루미늄 차체 기술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습니다. "계약 밖입니다." 공장 안에는 우리 기술자들이 얼씬도 못 하도록 높은 칸막이까지 쳐놨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그 서러움이 오히려 불씨가 됐습니다.
◆ 요약 : 1994년 프랑스와 맺은 기술이전 계약은 껍데기 도면만 넘겨받은 반쪽짜리였고, 그 서러움이 독자 개발의 동력이 됐습니다.
현대로템의 질주 외환위기 한복판에서도 멈추지 않은 개발
1996년 12월, 정부가 한국형 고속전철 개발 사업에 착수합니다. 목표는 시속 350km급 국산 열차. 그런데 딱 1년 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집니다. 자고 일어나면 대기업이 부도나고, 어제까지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오늘 짐을 싸던 그 겨울이었습니다. 당장 내일이 막막한데 수천억을 고속열차에 쏟아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사업을 접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99년에는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철도 3사가 합쳐져 현대로템이 탄생했습니다. 라이벌끼리 하룻밤 사이에 한 책상에 앉아야 했고, 쫓겨난 동료들을 뒤로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밤을 새웠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찡했던 건, 그 사람들이 영웅인 줄 알고 버텼던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냥 그게 자기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겁니다.
공사 현장 사정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1997년 미국 안전진단 업체 조사 결과, 서울~대전 구간 구조물 112개 가운데 70% 가까이가 지적을 받았습니다. 다시 지어야 할 곳만 39군데, 보수해야 할 곳이 177군데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 단군 이래 최대 부실로 드러났다"라고 썼습니다. 5조 8천억이던 사업비는 나중에 20조 원을 넘겼고, 6년이라던 공사는 12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12년 동안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기술자들은 밤마다 선로를 빌려 시험 열차를 몰았습니다. 막차가 끊긴 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속도를 조금씩 올려보고, 첫차가 다니기 전에 열차를 거둬들이는 일을 몇 년이나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12월, 우리 손으로 설계한 첫 한국형 고속열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요약 : 외환위기와 공사 부실 논란 속에서도 현대로템과 기술자들은 독자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2002년 국산 고속열차를 완성했습니다.
EMU의 탄생
2004년 4월 1일 새벽 5시, 서울역과 부산역 플랫폼에 동시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KTX 첫 출발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49분. 새마을호로 4시간 반이 걸리던 길이 반토막 났습니다. 그날 대한민국은 세계 다섯 번째로 시속 300km급 고속철도를 보유한 나라가 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주목하는 장면은 그로부터 8개월 뒤입니다. 2004년 12월 16일, 국산 시험열차가 시속 352.4km를 찍었습니다. 프랑스가 넘겨준 TGV의 영업 속도가 시속 300km였으니, 기술을 배운 지 10년도 안 돼서 스승의 한계를 넘어선 겁니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직접 알아낸다는 그 고집이 결국 맞아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TGV는 앞뒤 기관차가 열차를 끌고 미는 동력집중식 구조입니다. 여기서 동력집중식이란 한두 개의 기관차가 모든 동력을 담당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한국이 새로 선택한 건 EMU(Electric Multiple Unit), 즉 동력분산식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EMU란 모든 객차 바닥에 모터를 분산 배치해 열차 전체가 스스로 달리는 구조를 말합니다. 무거운 짐을 앞에서 한 명이 끄는 것보다 여럿이 붙어서 함께 미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차체 소재로는 프랑스 공장에서 칸막이 너머로만 봤던 그 알루미늄을 직접 구현해냈습니다. 가볍고 속도도 빠르고 전력 소모도 적은 알루미늄 차체 기술을, 결국 우리 손으로 완성한 겁니다. 2013년 시험열차 해무가 시속 421.4km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시속 400km의 벽을 깼고, 이 흐름이 2021년 KTX-이음, 2024년 KTX-청룡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운행 중인 기차들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 2004년 KTX 개통, 서울~부산 2시간 49분 달성
- 2004년 국산 시험열차 시속 352.4km 기록 — TGV 영업속도 초과
- 2013년 해무 시속 421.4km — 세계 4번째 400km 돌파
- 2021년 KTX-이음(EMU-260), 2024년 KTX-청룡 상업운행
◆ 요약 : 동력분산식(EMU)과 알루미늄 차체로 방식 자체를 바꾸면서, 한국 고속철도는 스승인 TGV의 기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사막을 넘어 우즈베키스탄 노선을 따낸 한국고속철도
2025년 12월, 경남 마산항 부두 크레인이 움직였습니다. 1998년 그 자리에서 프랑스제 열차를 내려받던 것과 똑같은 크레인이었는데, 이번엔 방향이 달랐습니다. 우리가 설계하고 만든 고속열차를 배에 싣고 있었습니다. 약속한 납기일보다 석 달이나 앞당겨서. 27년 만에 배 방향이 정반대로 뒤집힌 겁니다.
목적지는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주전의 경쟁 상대가 누구였는지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입니다. 프랑스 Alstom, 스페인 Talgo, 그리고 1993년 한국에 와서 "기술은 못 준다"며 제일 먼저 짐을 싸서 떠났던 일본 Hitachi였습니다. 33년 전 칸막이를 쳤던 상대들을 머나먼 사막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만난 거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20년 넘게 국내에서 사계절을 달리며 검증된 TCO(Total Cost of Ownership) 경쟁력입니다. TCO란 차량 구매 비용만이 아니라 유지보수, 부품 교체, 운영비까지 포함한 총 운영비용을 의미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막 고속철 시장의 경쟁이 최고속도 대결에서 TCO 대결로 이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50도 고온과 모래폭풍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저렴하게 운행하느냐가 핵심이 되는 겁니다.
둘째는 기술 이전 조건이었습니다. 30년 전 우리가 서러워했던 그 경험이 여기서 반전됩니다. 현대로템은 차량만 팔지 않고 유지보수 기술을 전수하고 우즈베키스탄 청년 기술자들을 철도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출처: 현대로템). 힘없이 칸막이 앞에 서야 했던 나라가, 이제는 기술을 건네는 쪽이 된 겁니다.
그리고 이 열차의 국산화율은 90%입니다. 차량 한 대가 아니라 국내 협력사 600곳의 기술이 통째로 사막을 건넌 셈입니다. 2026년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Qiddiya 고속철도 관심표명(EOI)에는 현대로템, 현대건설, 삼성물산, KIND 등 한국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사우디 국가경쟁력센터(NCP)). 제가 보기엔 우즈베키스탄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 요약 : 33년 전 떠났던 일본 Hitachi를 사막 수주전에서 꺾고 우즈베키스탄 1,020km 노선을 따낸 한국 고속철도는, 이제 중동 시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에 투입된 차량이 KTX-이음과 같은 건가요?
A. 기반 플랫폼은 KTX-이음(EMU-260)과 동일한 동력분산식 구조입니다. 다만 우즈베키스탄 노선에 맞게 50도 고온과 모래폭풍 환경을 견디도록 방진 설계와 냉각 시스템을 강화했습니다. 그냥 KTX를 가져다 놓은 게 아니라 사막 환경에 맞게 다시 설계한 별도 파생 모델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Q. 현대로템이 우즈베키스탄 수주에서 일본 Hitachi를 이긴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히 가격이나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년 이상 국내 상업운행으로 검증된 신뢰성, 차량과 함께 기술 이전·인력 양성까지 묶어서 제안한 패키지 방식, 그리고 정책금융 지원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사막 철도 시장에서는 차량 성능만큼 TCO(총운영비용)와 유지보수 계획이 결정적인 평가 항목입니다.
Q. 사우디 Qiddiya 고속철도에 한국이 실제로 수주할 가능성이 있나요?
A. 2025년 기준 145개 기업이 관심표명 단계에 참여했고, 한국 기업들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만 관심표명이 수주 확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CRRC를 필두로 한 중국, Siemens·Alstom을 앞세운 유럽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상업운행 실적이 중동 입찰에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유리한 변수입니다.
Q. 국내 협력사 600곳이 부품을 공급한다는 게 실제로 어떤 의미인가요?
A. 고속열차 한 대의 부품 수는 수만 개에 달합니다. 차체, 대차, 전장품, 실내 마감재, 통신 장비, 냉각 시스템 등 각 분야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분업해서 납품합니다. 국산화율 90%라는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 생태계 전체가 수출 경쟁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차량 한 대를 수출하는 게 아니라 600개 공장의 기술이 함께 나가는 겁니다.
결론
제가 이 30년짜리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속도 기록이나 수출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이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도 칸막이를 쳤던 프랑스가 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못 만들 거라는 계산은 당시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었습니다. 그 계산을 틀리게 만든 건 연구소나 대기업 로고가 아니라, 이름도 남지 않은 600개 공장에서 컵라면 먹으며 밤을 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사막 고속철도 시장은 최고속도 경쟁이 아닌 TCO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싸움에서 20년간의 실증 데이터를 가진 한국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자리에 있다고 봅니다. 우즈베키스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단순한 기대가 아닌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다음 행선지를 주목해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