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의 90% 이상은 아직도 실리콘이 차지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약 7% 안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GaN, 즉 질화갈륨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충전기 작아지는 기술 아닌가?" 정도로 가볍게 봤는데, 레이더·AI 데이터센터·공급망 국산화까지 연결되는 그림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GaN 반도체와 실리콘 한계
실리콘 트랜지스터는 접합 온도가 약 150도를 넘으면 정상 작동이 불가능합니다. 현장에서는 "150도 이상에서는 죽는다"는 표현을 실제로 씁니다. 반면 GaN 소자는 최대 접합 온도를 225~275도 수준으로 설정해도 안정적으로 동작합니다. 실리콘 대비 100도 이상의 여유가 생기는 셈입니다.
여기서 와이드밴드갭(WBG) 반도체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밴드갭이란 반도체가 전류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장벽입니다. 이 값이 클수록 고온·고전압 환경에서도 소자가 버팁니다. GaN의 밴드갭은 실리콘보다 최소 세 배 이상 높습니다. 이것이 GaN이 방산 레이더나 AI 서버 전원에 쓰이는 핵심 이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에피텍시(Epitaxy) 공정입니다. 에피텍시란 기판 위에 원자 단위로 결정층을 차곡차곡 성장시키는 공정으로, GaN 반도체의 성능은 이 층이 얼마나 균일하게 쌓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RFHIC의 제조 공정을 살펴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클린룸에서 금선 하나를 반도체 칩에 연결하는 와이어 본딩(Wire Bonding) 작업이나 다이 어태치(Die Attach) 공정, 즉 반도체 칩을 패키지에 붙이는 과정을 초음파 검사로 따로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소재가 얼마나 정밀한 신뢰성을 요구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GaN과 실리콘, SiC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Si(실리콘): 저렴하고 범용적이지만 고온·고주파에서 한계가 뚜렷함
- GaN(질화갈륨): 고주파·고전력밀도·소형화에 최적화, 충전기부터 데이터센터·레이더까지 확장 중
- SiC(탄화규소): 고전압·고출력이 강점, 전기차 메인 인버터와 산업용 전력망이 주전장
세 소재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는 구도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이 세 가지를 단순히 경쟁 관계로 보는 시각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전압 영역과 응용 분야에 따라 Si·GaN·SiC가 조합되는 방식으로 시장이 분화되고 있습니다.
◈ 요약 : GaN은 와이드밴드갭 특성 덕분에 실리콘이 버티지 못하는 고온·고주파 환경을 공략하며, Si·SiC와 시장을 나눠 갖는 구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가 GaN의 진짜 승부처인 이유
저는 GaN에서 가장 주목하는 시장을 하나만 꼽으라면 AI 데이터센터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GPU의 연산 성능이 올라갈수록 전력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전력망에서 GPU까지 전압을 여러 단계에 걸쳐 변환하는 과정마다 손실이 쌓입니다. 데이터센터가 수백 MW에서 GW급 규모로 커지면, 전력변환 손실을 몇 퍼센트 줄이는 것만으로도 수십억 원의 비용 차이가 납니다.
2026년 arXiv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GaN은 PFC(역률보정회로), 절연 DC/DC 변환, 48V 버스, 포인트 오브 로드(Point-of-Load) 단계 등에서 높은 스위칭 주파수와 전력밀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출처: arXiv). 여기서 PFC란 전원장치가 전력망에서 전력을 받아올 때 불필요한 전류 손실을 줄이는 회로를 말합니다. 스위칭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주변 인덕터·커패시터 등 부품을 작게 만들 수 있고, 결국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서버를 집어넣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800V HVDC 데이터센터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HVDC란 고전압 직류 배전을 의미하는데, AI 서버의 전력 수요가 커지면서 기존보다 높은 전압으로 전력을 분배하는 방향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2026년 IEEE 연구에서는 800V HVDC 환경에 GaN LLC 컨버터를 결합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제시됐습니다(출처: IEEE Xplore). 이렇게 되면 GaN의 역할이 65W·100W 충전기를 훨씬 넘어 수 kW~수십 kW급 전력변환 시스템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전압 GaN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GaN의 주력은 650V급이었는데, Power Integrations는 2026년 2,200V급 PowiGaN 기술을 공개하면서 AI 데이터센터·전기차·태양광·HVDC를 목표 시장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GaN이 SiC가 독점하던 고전압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2030년 이후 GaN과 SiC의 경계가 지금보다 훨씬 흐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피니언이 제시한 시장 전망치에 따르면, GaN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6년 약 9억 2천만 달러에서 2030년 약 3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물론 회사 측 전망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업계 전반에서 공유되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요약 : GaN의 진짜 승부처는 충전기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이며, 800V HVDC와 2,200V급 고전압 GaN이 그다음 단계를 열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치와 공급망 경쟁, 지금 봐야 할 것들
솔직히 이 부분이 제가 가장 신중하게 보는 대목입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GaN 전력반도체 생태계만 놓고 보면 미국·유럽·중국·일본의 전문기업에 비해 아직 얕은 편입니다. RFHIC처럼 26년을 GaN 하나에 집중해 온 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단일 기업의 경쟁력과 생태계 전체의 성숙도는 다른 문제입니다.
GaN 생태계란 GaN 소재 → 웨이퍼 → 에피 → 소자 → 패키지 → 전력IC → 전원장치로 이어지는 수직 공급망 전체를 말합니다. 이 중 어느 한 고리가 끊기면 최종 제품의 경쟁력도 흔들립니다.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LX세미콘 등과 AI 서버 생태계를 연결할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특정 국내 기업을 GaN 순수 수혜주로 단정하는 것은 제 경험상 상당히 위험한 판단입니다. 실제 GaN 매출 비중, 양산 수율, 고객 인증 여부를 하나하나 따져봐야 합니다.
국제 공급망 경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Navitas Semiconductor는 2026년 9월 GlobalFoundries의 미국 200mm GaN-on-Si 라인에서 제조한 Gen 5 GaNFast 제품의 첫 출하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GaN을 생산한다는 것은 단순한 제조 이슈가 아닙니다. AI 데이터센터 공급망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Innoscience 같은 GaN 전문기업이 빠르게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고, 인피니언과의 특허 분쟁에서 중국 법원이 Innoscience 측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ITC에서는 반대 방향의 판단이 나온 상태라, 동일한 기술을 놓고 중국·미국·유럽이 법적·산업적으로 동시에 충돌하는 상황입니다.
300mm GaN-on-Si 웨이퍼 기술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인피니언은 기존 300mm 실리콘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GaN 웨이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으며, 약 450개의 GaN 특허 패밀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00mm 웨이퍼가 상용화되면 GaN의 가장 큰 약점인 가격 문제가 일부 해소될 수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시점이 GaN 시장의 실질적인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GaN을 볼 때 챙겨야 할 핵심 체크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I 데이터센터 전력변환 수주 여부와 실제 매출 비중
- 800V·1,500V DC 고전압 영역 진입 기술력
- 300mm 웨이퍼 전환 일정과 원가 경쟁력
- GaN+SiC 복합 전력시스템 설계 역량
- 미국·중국 공급망 규제 환경에서의 생산 위치
한국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도 이 맥락에서 함께 읽어야 합니다. NAVER는 NVIDIA와 함께 AI 인프라를 55MW에서 기가와트급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실제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전력변환 장치의 효율 경쟁도 국내에서 본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 요약 : GaN 공급망은 미국·중국·유럽이 전략적으로 충돌하는 전장이 됐으며, 한국은 메모리 강점을 바탕으로 AI 서버 전력 생태계와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GaN 반도체가 실리콘을 완전히 대체하게 되나요?
A. 완전 대체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실리콘은 여전히 가격과 공급망 성숙도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GaN은 고주파·고전력밀도가 필요한 구간에서 실리콘이 못 하는 역할을 맡는 구조로, 두 소재가 영역을 나눠 공존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2030년대에도 실리콘이 범용 시장의 중심을 유지할 것입니다.
Q. GaN이 전기차에도 많이 쓰이게 되나요?
A. 메인 구동 인버터는 당분간 SiC의 영역입니다. 고전압·고출력에서 SiC의 경쟁력이 아직 강합니다. 다만 OBC(탑재형 충전기), DC-DC 컨버터, 보조 전원 등 상대적으로 전압이 낮고 소형화가 중요한 영역에서는 GaN이 빠르게 치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기차에서 GaN을 보려면 이 세부 영역을 따로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Q. RFHIC는 어떤 회사인가요?
A. 1999년 설립된 대한민국의 GaN 기반 전력 증폭기 전문기업입니다. 매출의 95% 이상이 GaN(질화갈륨)에서 발생하며, 통신 기지국용 전력 증폭기로 시작해 현재는 방산 레이더, 위성통신, 산업용 RF 에너지까지 사업을 확장한 상태입니다. 26년간 한 기술에 집중해온 이력 자체가 이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Q. GaN 충전기가 작아지는 이유가 뭔가요?
A. 핵심은 스위칭 주파수입니다. GaN 소자는 실리콘보다 훨씬 빠르게 전류를 켜고 끌 수 있어서 스위칭 주파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주파수가 높아지면 전력 변환에 필요한 인덕터·변압기·커패시터 등 주변 부품의 크기가 줄어들고, 결국 충전기 전체가 작고 가벼워집니다. 40W 이상 고속 충전기에 GaN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Q. GaN 관련 투자를 볼 때 어디부터 확인해야 하나요?
A. "Ga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다 같은 게 아닙니다. 실제 GaN 매출 비중, 양산 수율, AI 데이터센터 고객 인증 여부, 웨이퍼 생산능력, 핵심 특허 수를 하나씩 따져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2026년 현재 기술 발표와 실제 대량 양산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발표 자료보다는 실제 매출과 수율 데이터를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제가 GaN을 정의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실리콘을 대체하는 반도체"가 아니라 "전력변환의 고주파·고밀도화를 가능하게 하는 소재"입니다. 스마트폰 충전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방산 레이더, 위성통신, 800V HVDC 전력계통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GaN은 단순한 부품 소재를 넘어 AI 시대 전력 인프라의 핵심 소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GaN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가격은 여전히 실리콘보다 비싸고, 고속 스위칭 과정에서 EMI(전자기 간섭)와 게이트 구동 설계가 복잡해집니다. 공급망도 실리콘만큼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GaN을 볼 때 항상 세 가지를 동시에 확인합니다. 실제 양산 수율과 고객 인증이 있는지, 300mm 웨이퍼 전환이 언제 이뤄지는지, 그리고 미국·중국 공급망 경쟁에서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이 세 가지가 맞물리는 시점이 GaN 시장의 진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