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입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물부족국가가 많으며 한국도 물부족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기업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을 때 저는 선뜻 믿기가 어려 웠습니다. 제가 처음 해수 담수화 기술 관련 내용을 들여다봤을 때 "물 만드는 게 그렇게 대단한 기술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해수 담수화 기술은 단순한 인프라 사업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안보가 걸린 전략 산업이었습니다. 한국이 어떻게 이 시장에서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제가 정리한 내용을 나눠보겠습니다.
세계 경쟁 구도
전 세계에 현재 약 2만 개 이상의 담수화 시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출처: AP News). 담수화란 바닷물이나 염수에서 염분과 불순물을 제거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민물로 바꾸는 기술입니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로 덮여 있지만, 정작 마실 수 있는 민물은 전체 물의 3%도 안 됩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기술이 바로 해수 담수화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역삼투압(RO, Reverse Osmosis)입니다. 여기서 역삼투압이란 특수 분리막에 고압을 가해 물 분자만 통과시키고 염분과 불순물은 걸러내는 방식으로, 물을 끓여 증기를 모으는 기존 증발식보다 에너지 소비가 훨씬 적습니다. 신규 플랜트의 상당수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장을 누가 이끌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이스라엘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고효율 역삼투압, 물 재이용, 스마트 물 관리를 결합해 이미 물 자립에 가까운 수준을 달성했습니다. Veolia, SUEZ 같은 프랑스·유럽계 대형 기업들은 플랜트 설계와 장기 운영 서비스 수출에서 여전히 강자입니다. IDE Technologies(이스라엘), ACWA Power(사우디), Xylem(미국) 등도 각자의 영역에서 강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경쟁 구도를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술을 가진 나라와 돈을 가진 나라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는 점입니다. 사우디, UAE, 쿠웨이트는 국가 식수의 절반 이상을 담수화에 의존하면서도 정작 핵심 기술은 외부에서 사 와야 합니다. 이 나라들에서 담수화 시설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국가 안보 인프라로 분류될 만큼 중요합니다. 분쟁 상황에서 전략 시설로 간주될 정도입니다(출처: The Guardian). 그래서 이 시장에서 신뢰를 쌓은 기업은 한 번 발을 들이면 수십 년짜리 관계가 형성됩니다.
- 역삼투압(RO): 현재 신규 플랜트의 주력 기술, 에너지 효율이 증발식 대비 높음
- 다단계 플래시 증발(MSF): 중동 구형 시설에 많이 적용, 에너지 소비가 큰 편
- EPC(설계·조달·시공) 경쟁: 한국·일본이 강점, 유럽은 설계·운영 서비스 중심
- 차세대 기술: 그래핀 분리막, 태양광 연계, AI 기반 운영 최적화 연구 활발
▶ 요약 : 해수 담수화 시장은 기술 보유국과 수요 국가가 뚜렷이 분리된 구조로, 신뢰와 실적이 장기 수주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한국 기술과 미래 전망
1978년 두산에너빌리티(당시 한국중공업)가 사우디아라비아 파라잔 지역의 해수 담수화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한국은 부품 납품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1985년에는 사우디 아시르 지역 입찰에서 세 번이나 미끄러진 끝에 미국 기업과 손을 잡고 기술을 전수받는 조건으로 겨우 계약을 땄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씁쓸했습니다. 지금의 위상과 너무 다른 출발점이었으니까요.
반전의 핵심은 모듈러 공법이었습니다. 여기서 모듈러 공법이란 현지에서 조각조각 조립하던 방식을 버리고, 공장에서 설비를 완제품으로 통째로 만든 뒤 배로 실어 보내는 방식입니다. 증발식 담수 플랜트의 핵심 설비인 담수 증발기(MSF 유닛)는 무게만 3,500톤에 크기는 축구장에 맞먹습니다. 기존 선진국들은 이걸 나눠서 현지 사막에서 수백 명이 수년간 조립했습니다. 당연히 품질 편차가 생기고 공기도 길어졌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에 여의도 1.5배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이 거대한 설비를 통째로 제작해 해상 운송으로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판이 뒤집혔습니다. 현지 조립이 필요 없으니 공기가 줄었고, 국내 공장에서 정밀 제작하니 품질이 월등히 올라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거대 담수 설비를 완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현재 한국, 일본, 이탈리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1년 UAE 후자이라에서 약 1조 원 규모의 초대형 담수 플랜트를 수주하며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움직임이 있습니다. 바로 드림즈호입니다. 고정식 플랜트가 아니라 자체 엔진을 달고 항해하며 물을 만드는 담수화 선박으로, 2018년부터 환경부 주도로 12개 연구기관이 참여해 개발됐습니다. 길이 70m가 넘는 이 배는 하루 최대 450톤의 민물을 생산합니다. 2022년 겨울 전남 도서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완도와 여수 인근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마을 물탱크를 채워준 것이 바로 이 드림즈호입니다. 제가 이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는 꽤 인상 깊었습니다. 기술이 산업 수출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우리 섬마을 어르신들의 목을 축여주는 데 직접 닿아 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물론 그늘도 있습니다. 부산 기장의 담수화 시설은 인근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주민 우려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사우디 네옴시티 담수 사업은 프로젝트 계획 변경으로 무산됐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주민 신뢰와 프로젝트 안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 두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전망을 두고는 의견이 갈립니다. 기후변화와 가뭄 심화, AI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의 용수 수요 급증, 수소 생산 시설 확대 등을 근거로 담수화 시장이 향후 10~20년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반면 에너지 소비가 많고 농축 염수(브라인) 방류로 인한 해양 생태계 피해, 높은 운영비가 장기 확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틀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재생에너지 연계, 고효율 분리막 개발, 브라인에서 리튬·마그네슘 같은 광물을 회수하는 자원화 기술이 함께 성숙해야만 담수화가 진정한 지속가능 산업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입니다. 2025년 5월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한 사우디 슈아이바 플랜트(두산에너빌리티, 하루 60만 톤 생산 규모)가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된 것은 그런 방향성이 이미 실전에 반영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 요약 : 한국은 모듈러 공법과 현장 실적 축적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으며, 재생에너지·AI 연계 기술이 다음 도약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해수 담수화 자주 묻는 질문
Q. 해수 담수화를 하면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게 되는 건가요?
A.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담수화는 에너지와 비용을 투입해 물을 생산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전력 공급과 운영 비용이 충분히 확보된 곳에서만 경제성이 성립합니다. 재생에너지 연계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넓은 지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열립니다.
Q. 한국이 담수화 분야에서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이나 유럽보다 정말 앞서나요?
A. 분야마다 다릅니다. 기술력 자체만 따지면 이스라엘이 역삼투압 효율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영역은 EPC(설계·조달·시공), 즉 대형 플랜트를 실제로 완성해 납품하는 실행 역량과 모듈러 공법입니다. 실적 기준 수주 규모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브라인(농축 염수) 배출이 왜 문제가 되나요?
A. 역삼투압 과정에서 담수를 뽑아내고 남은 고농도 소금물이 브라인입니다. 이걸 바다에 방류하면 방류 지점 주변의 염분 농도가 올라가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이 브라인에서 리튬·마그네슘 같은 광물을 회수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폐기물이 자원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Q. 드림즈호 같은 이동식 담수화 선박이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나요?
A. 2022년 전남 도서 지역 가뭄 대응 사례를 보면 실용성은 이미 입증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하루 최대 450톤 생산 규모는 대형 고정식 플랜트(하루 수십만 톤)에 비하면 작습니다. 재난 대응이나 도서·오지처럼 고정 인프라 설치가 어려운 곳에서 특화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해수 담수화는 석유처럼 땅에서 꺼내는 자원이 아니라, 기술과 에너지를 투입해 만들어내는 자원입니다. 그래서 이 시장에서 경쟁력의 핵심은 얼마나 싸게,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로 귀결됩니다. 한국이 40여 년간 중동 시장에서 쌓아온 것이 바로 그 세 가지 신뢰입니다.
저는 이 분야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물 부족국가가 많은 것이 현실이고 특히 그중 물 부족이 심한 국가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관련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재생에너지 연계와 브라인 자원화, AI 기반 운영 최적화 같은 과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으면 성장에 한계가 올 수 있다는 시각도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중동 수주 동향과 국내 도서 지역 물 인프라 사업을 함께 살펴보시면 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