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투자한 회사가 삼성전자도 SK 하이닉스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셨습니까? 직원 수십 명짜리 무명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뭔가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시가총액 4,000조 원이 넘는 세계 최강 반도체 기업이 왜 하필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나온 작은 회사에 돈을 넣었는지, 그 이유를 파고들수록 AI 산업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구리의 한계와 광케이블
엔비디아의 GPU는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수만 개의 GPU를 한꺼번에 묶어서 거대한 두뇌처럼 돌리는 것이 AI 데이터센터의 기본 구조입니다. 이때 칩과 칩 사이를 오가는 데이터 통로, 즉 인터커넥트(Interconnect)가 전체 성능을 결정합니다. 인터커넥트란 서버 내부 또는 서버 간 칩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경로를 뜻합니다. 지금까지 이 역할을 맡아온 것이 구리선이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요구하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구리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차세대 속도 기준으로는 거리가 2m를 조금 넘어서는 순간 신호 감쇠, 즉 신호가 급격히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억지로 신호를 밀어 넣으면 열과 전력 소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제가 엔비디아의 재무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놀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이 중소도시 하나 수준이고 그 상당 부분이 칩 연산이 아니라 신호 전송과 냉각에 쓰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엔비디아가 눈을 돌린 것이 광케이블입니다. 광케이블은 전기 신호 대신 빛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유리 섬유 안으로 광신호를 쏘는 방식으로, 구리에 비해 전력 소모가 적고 전송 거리가 훨씬 깁니다.
엔비디아는 2026년 3월 광통신 부품 1, 2위 기업인 루멘텀과 코어런트에 각각 20억 달러씩, 합산 4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광섬유의 원조 기업인 미국 코닝에 최대 32억 달러 규모의 투자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두 건만 합쳐도 10조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케이블 기술에 쏟아붓는 겁니다.
엔비디아 한국 투자는 포인투 테크놀로지
그런데 여기서 저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엔비디아가 한국에서 최초로 직접 투자한 포인투 테크놀로지는 광케이블 회사가 아닙니다. 빛도 구리도 아닌 제3의 방식을 씁니다.
전파를 플라스틱 관 안에 가두어 한 방향으로 쏘는 기술인데, 회사는 이를 웨이브가이드 튜브(Waveguide Tube), 줄여서 'W-tube'라고 부릅니다. 웨이브가이드란 전파나 빛을 특정 경로 안에 가두어 손실 없이 전달하는 도파관 구조를 의미합니다. 라면 면발보다 얇은 플라스틱 관 안으로 수십에서 수백 GHz에 달하는 밀리미터파(mmWave)가 흐르는 구조입니다. 밀리미터파란 파장이 1~10mm 사이인 초고주파 대역으로, 매우 많은 양의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전송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집니다. 포인투가 공개한 수치를 보면 전송 거리는 구리선의 10배, 무게는 구리의 수분의 1 수준이고, 전력과 비용은 광케이블 대비 절반 이하입니다. 광케이블은 빛 자체는 빠르지만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꾸고 다시 전기로 바꾸는 광전 변환 과정에서 전력 소모와 지연이 생깁니다. 포인투의 기술은 이 변환 과정 자체를 없애 버립니다.
구리의 단순함과 광의 장거리 특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배현민 교수는 지금까지 다섯 개의 회사를 창업한 인물입니다. 그중 통신용 반도체 회사 하나는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고 인수됐습니다. 2016년 카이스트 동문들과 함께 설립한 포인투는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 산호세에 뒀습니다. 초반엔 광도 구리도 아닌 어중간한 기술이라는 냉담한 시선이 많았습니다. 직원 수십 명짜리 스타트업이 거인들과 경쟁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무시를 뒤집은 것이 엔비디아의 투자 결정이었습니다.
수혜 기업을 가르는 기준 광통신과 HBM
엔비디아가 광으로 간다는 소식이 퍼지자 한국 증시에서 광통신 관련주라는 딱지가 붙은 종목들이 폭등했습니다. 어떤 종목은 1년 만에 주가가 3,500% 넘게 뛰었고, 5월에는 TMC라는 회사가 미국 데이터센터와 110억 원짜리 광케이블 공급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그날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설레는 동시에 불안했습니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와 너무 흡사한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광통신이 미래라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광섬유의 대표 기업 코닝 주가는 2년 만에 10배 넘게 올라 100달러를 넘겼다가, 거품이 꺼지자 90% 이상 폭락해 1달러대까지 추락했습니다. 방향 자체는 맞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실제로 광통신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방향이 맞다고 모든 기업이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고, 타이밍을 잘못 잡은 투자자들은 본전을 찾기까지 10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금 한국 증시에서도 실제 계약과 실적을 갖춘 기업과 이름에 광통신이라는 단어만 들어간 기업이 뒤섞여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테마 장세에서는 분위기로 오른 종목이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떨어집니다. 진짜 수혜 기업을 가려내려면 다음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실제 납품 계약서가 존재하는가 (계약 공시 여부)
▷ 데이터센터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에서 뚜렷이 확인되는가
▷ 엔비디아 또는 빅테크가 지목한 기술 규격 안에 포함되어 있는가 한편으로는 광통신 테마주를 직접 매수하지 않아도 이 흐름에 이미 올라타 있는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HBM이란 GPU 칩 바로 옆에 적층 구조로 붙어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공급하는 고용량 메모리를 뜻합니다. 광통신으로 GPU와 GPU 사이의 통로가 넓어지면 묶을 수 있는 GPU 수가 늘어나고, GPU가 늘면 그 옆에 붙는 HBM 수요도 함께 폭발합니다.
2026년 HBM 시장 규모는 약 85조 원으로 추정되며, SK 하이닉스가 절반 가량, 삼성전자가 약 3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코패키지드 옵틱스(Co-Packaged Optics, CPO) 로드맵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CPO란 광학 부품을 GPU 칩 패키지 내부에 직접 통합해 광전 변환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입니다. 엔비디아는 당초 계획보다 5년을 앞당겨 2028년 차세대 플랫폼 'Feynman' 세대부터 CPO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5년 일정을 당긴다는 것은 그만큼 구리의 한계가 이미 발등의 불이 됐다는 신호입니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규모는 2025년 이후 연간 수백억 달러 이상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NVIDIA 연간 보고서]
전문가들은 구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여전히 구리가 비용 대비 효율이 높고, 광전환은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광통신이 대세가 되는 방향 자체는 맞지만, 그 전환이 완성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테마만 쫓아 투자하면 2000년 코닝의 역사를 그대로 반복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한국의 첫 직접 투자 대상으로 대형 메모리 제조사가 아닌 기초 원천 기술을 보유한 작은 스타트업을 고른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제가 직접 분석하면서 느낀 건, 이 사건이 양산 능력만이 한국 반도체의 강점이라는 통념에 균열을 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처음 만들어내는 힘이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