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론의 최근 분기 영업이익률이 83%를 넘겼습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타이핑 오류인 줄 알았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업도 아니고 실리콘을 물리적으로 깎아서 파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이 마진을 냈다는 게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런데 실적 자료를 천천히 뜯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숫자의 배경과, 이것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3%가 가능한 이유 — HBM 마진의 실체
일반적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마진이 낮은 장치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공장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고, 가격은 수요·공급에 따라 출렁이고, 재고가 쌓이는 순간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실적을 직접 살펴보고 제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실적에서 AI 데이터센터 부문의 총마진율은 87%, 영업이익률은 83%를 기록했습니다. 이 부문의 핵심 제품이 바로 HBM(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HBM이란 일반 D램 칩을 여러 장 수직으로 쌓아 TSV(Through-Silicon Via) 공정으로 연결한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여기서 TSV란 실리콘 웨이퍼에 수직 방향으로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전기 신호를 통과시키는 초정밀 연결 기술을 의미합니다. 만들기가 매우 까다로운 만큼 수율(양품 비율)이 낮고, 그래서 경쟁사가 쉽게 따라오기 어렵습니다. 마이크론 CEO는 실적 발표에서 "HBM 생산 시 D램 대비 손실이 약 4배 더 발생한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HBM의 원재료가 되는 범용 D램 부문 영업이익률이 86%로, HBM보다 오히려 살짝 높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데이터를 봤을 때 "그러면 왜 굳이 HBM을 만드나?" 싶었는데, 이게 바로 SK하이닉스가 최근 "HBM 배정 비율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이었습니다. 어렵게 쌓아 올려서 만드는 것보다 그냥 D램을 파는 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깔린 결정입니다.
- AI 데이터센터 부문 총마진 87%, 영업이익률 83% 기록
- 범용 D램 영업이익률 86%로 HBM보다 높은 수준
- HBM 수율 문제로 웨이퍼 투입 대비 실제 출하량이 크게 줄어드는 구조
D램 사이클 — 이번엔 정말 다른가
주당순이익(EPS)이 한 분기 만에 12.2달러에서 25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이전 분기에도 4.78달러에서 12.2달러로 뛰었으니 두 분기 연속 200%를 넘는 성장률입니다. 매출 역시 1년 반 전 대비 다섯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수치는 솔직히 엔비디아 실적 발표 때 봤던 숫자와 비교해도 더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수치를 확인하면서 "이게 반도체 회사 숫자가 맞나"라고 다시 들여다봤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반적으로 D램 산업은 공급이 늘면 가격이 폭락하는 전형적인 경기순환(사이클) 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2022~2024년에 삼성전자 평택 공장 건설이 중단되고 파운드리 투자가 철수되는 등 혹독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공급을 늘렸더니 수요가 따라오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공급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HBM으로 빠져나가면서 범용 D램 공급이 오히려 20% 가까이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새 시장이 열리면서 기존 시장이 공급 부족 상태로 전환된 것입니다.
마이크론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SCA(Strategic Customer Agreement), 즉 전략적 고객 계약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SCA란 특정 대형 고객에게 시장 가격 하단으로 5년(자동차는 3년) 장기 공급하는 대신, 고객이 물량을 가져가든 포기하든 대금은 지불해야 하는 'take-or-pay' 방식의 계약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기 계약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건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2022~2023년 오더컷(Order Cut), 즉 고객이 주문을 갑자기 대량 취소하면서 재고가 창고에 쌓였던 기억이 이 계약의 배경입니다.
이 때문에 D램 사이클이 소멸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아직 사이클 산업이라는 본질은 유지된다고 봅니다. 다만 AI 수요라는 구조적 성장이 겹쳐 있어 사이클의 진폭과 타이밍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게 핵심입니다. 출처: Reuters 등 주요 외신도 메모리 산업의 구조 변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 주당순이익 두 분기 연속 200% 이상 성장
- SCA(전략적 고객 계약)로 오더컷 리스크를 선제 방어
- HBM 전환으로 범용 D램 공급이 20% 감소, 가격 상승 구조 형성
삼성 vs 하이닉스 — 마이크론 실적이 알려준 것
마이크론 실적이 나오면 한국 반도체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다음 실적을 미리 가늠하는 가장 빠른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제가 직접 수치를 뜯어보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HBM 점유율 측면에서 SK하이닉스는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HBM 수율 문제로 여전히 고전 중입니다. 삼성전자의 월 웨이퍼 생산 캐파(Capacity), 즉 생산 능력은 약 80만 장 수준인데 그중 15만 장이 HBM 생산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수율이 낮으니 투입 대비 출하량이 크게 줄고, 그 반대급부로 범용 D램 공급은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번 실적이 보여준 것처럼 범용 D램의 영업이익률이 86%에 달합니다. 범용 D램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회사는 물량 기준으로 삼성전자입니다. 이 말은 곧 HBM에서 뒤처졌더라도 범용 D램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지금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6월 상반월 기준 수출액이 전월 대비 약 100억 달러 늘었는데, 그 상당 부분이 반도체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Investing.com).
지난 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약 57조 원이었는데, 이번 분기는 국내 애널리스트들을 중심으로 85조~90조 원을 전망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다만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을 한꺼번에 반영하면 시티은행 추정치처럼 70조 원대 중반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변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이 실적 발표 이후 가장 중요한 해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변수가 있는 분기에는 숫자보다 회사의 설명, 즉 IR(Investor Relations) 코멘트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 SK하이닉스: HBM 점유율 50% 이상 유지, 이익 증가폭 크게 기대
- 삼성전자: 범용 D램 물량 우위로 절대 영업이익 규모는 여전히 우위
- 성과급 일회성 비용 처리 방식이 삼성전자 실적의 핵심 변수
앞으로의 주가 — 엔비디아에서 배운 교훈
실적이 계속 서프라이즈여도 주가가 그만큼 오르지 않는 시기가 옵니다. 엔비디아가 이미 그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분기 실적은 매번 시장 예상을 웃돌았지만 주가 상승 각도는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게 완만해졌고, PER(Price-to-Earnings Ratio), 즉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밸류에이션 배수가 80배에서 44배, 다시 20배대 초반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익이 늘었는데 배수가 줄어드니 주가가 그 자리였던 것입니다.
마이크론도 비슷한 경로를 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두 분기 연속 70% 이상의 분기 성장률(QoQ)을 기록했지만, 다음 분기 가이던스는 30% 내외 성장으로 제시됐습니다. 모수가 커진 탓입니다. 이익 자체는 계속 늘겠지만 성장률의 기울기가 꺾이기 시작하면 멀티플이 먼저 반응합니다. 이 패턴을 엔비디아에서 직접 확인한 만큼, 마이크론도 같은 시계열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연간 기준(YoY) 성장률은 앞으로 두 분기 정도는 여전히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SK하이닉스 주가가 30만 원 수준이었고 본격적인 이익 추정 상향이 9~10월에 집중됐으니, 비교 기저가 낮아 YoY 수치는 당분간 견고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큰 조정을 예상하기보다는 상승 속도가 완만해지는 국면으로 전환 중이라는 시각이 저는 더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한편 중국 AI 기업의 부상도 주목해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가 "범용적 AI를 위해 딥시크를 활용할 것을 고려 중"이라고 언급한 건 조용히 넘어가기 어려운 발언이었습니다. 또한 앤트로픽은 중국 알리바바의 큐원(Qwen) 계열 모델이 클로드의 대화 수천만 건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자사 모델을 모방했다며 의회에 서한을 제출했습니다. 미국 기업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중국 AI를 채택하기 시작하면, 오픈AI·앤트로픽의 유료 사용자 기반이 흔들리고 그것이 다시 AI 인프라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메모리 수요의 최종 엔진이 AI 서비스 기업들인 만큼, 이 부분은 계속 주시해야 할 리스크입니다.
- 분기 성장률(QoQ) 둔화 시작 → 밸류에이션 멀티플 조정 가능성
- 연간 성장률(YoY)은 향후 두 분기 정도 견조할 전망
- 중국 AI의 미국 시장 침투 여부가 핵심 리스크 요인
- SK하이닉스 ADR 상장은 한국 반도체 재평가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
정리하면, 마이크론의 이번 실적은 단순히 "실적이 좋다"는 수준을 넘어 메모리 산업의 수익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였습니다. 범용 D램과 HBM 모두 80%대 영업이익률이 나온다는 건 공급 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고, 이 구조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주가는 실적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는 속성이 있습니다. 엔비디아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익 증가가 계속되더라도 성장률의 기울기가 꺾이는 순간부터 주가의 색깔은 달라집니다. 지금은 실적 확인보다 다음 분기 가이던스와 중국 AI 동향을 함께 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