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나노기술을 오랫동안 '소재 분야 이야기'로만 들어왔습니다. 반도체, 바이오, AI를 각각 따로 보는 시각이 몸에 배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한국 과학자가 80년 묵은 난제를 풀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빛을 최대 1조 배까지 균일하게 증폭시키는 나노입자를 직접 합성하고, 거기에 맞는 현미경까지 손수 개발해서 세상에 없던 현상을 눈으로 증명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AI·바이오·반도체 세 분야가 이 연구 하나에서 전부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80년 난제 라만신호와 나노입자, 광사태에 대해 정리하였고, 글 하단에는 광사태 나노기술 관련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리하였으니, 읽어 보시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 되실 겁니다.

80년 난제, 라만신호 — 왜 아무도 못 풀었나
1928년 인도의 물리학자 C. V. 라만은 빛이 분자에 닿으면 파장이 미세하게 달라진 새로운 빛이 나온다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상을 라만 산란(Raman scattering)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분자마다 고유한 '광학 지문'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분자 정보를 읽을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분석 도구입니다. 라만은 이 발견으로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노벨 위원회).
문제는 신호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어오는 빛 대비 라만 신호의 세기는 수백만 분의 1에 불과합니다. 설령 증폭을 시켜도 그 증폭률이 들쭉날쭉해서 실생활에 쓰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바이오 센서 쪽 스타트업을 검토할 때도 이 부분이 항상 걸렸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재현성이 문제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요.
서영덕 박사 연구팀은 이 문제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핵심은 표면 증강 라만 산란(SERS, Surface-Enhanced Raman Scattering)의 '핫스팟'을 얼마나 균일하게 만드느냐였습니다. SERS란 금속 나노구조 표면 근처에서 라만 신호가 극적으로 강해지는 현상으로, 잘 만들면 단일 분자 하나도 검출할 수 있는 감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나노 아령과 나노 금방울이라는 독특한 구조의 금속 나노입자를 설계해 라만 염색 물질과 DNA 사이에 약 1나노미터(nm)의 극히 좁은 간극을 만들었습니다. 이 틈새가 바로 핫스팟이 되어 100억 배에서 최대 1조 배까지, 그것도 균일하게 신호를 증폭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성과는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게재됐습니다(출처: Nature Materials).
- 라만 산란: 분자 고유의 광학 지문 신호. 발견 후 90년 넘게 실용화 난항
- SERS 핫스팟: 금속 나노구조 표면의 전자기장 집중 지점. 신호 증폭의 핵심
- 나노 아령·나노 금방울: 1nm 간극으로 1조 배 균일 증폭 달성한 신소재
- 게재지: Nature Materials, Nature Nanotechnology (표지 논문 선정)
◆ 요약 : 80년간 신호 불균일 문제로 막혔던 라만 분석의 실용화를 1nm 간극 나노구조로 돌파, 세계 최초 1조 배 균일 증폭 달성
나노입자·광사태 — AI·바이오·반도체가 만나는 접점
같은 연구팀이 또 하나의 성과를 냈는데, 이건 제가 처음 들었을 때 더 놀랐습니다. 광사태(photon avalanche) 현상입니다. 광사태란 아주 약한 빛을 가했을 때 나노입자 내부에서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연쇄 증폭되어 입력보다 훨씬 강한 빛이 방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나노입자 단위에서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직접 관찰해 증명한 것은 세계 최초였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2025년 1월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습니다.
연구팀은 이트륨-툴륨(Yb³⁺/Tm³⁺) 기반 나노입자에 툴륨을 통상적인 1% 미만이 아닌 8% 이상 고농도로 첨가했습니다. 여기서 업컨버전(upconvers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업컨버전이란 낮은 에너지의 빛을 흡수해 더 높은 에너지의 빛으로 변환해 내는 현상입니다. 통상 업컨버전 나노입자는 이 효율이 낮고 불규칙했는데, 툴륨 고농도 도핑이 광사태 피드백 루프를 촉발해 연쇄적인 에너지 전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직접 관심을 갖게 된 건 응용 범위 때문이었습니다. 벤처캐피털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원천기술이 여러 시장을 동시에 건드릴 때 진짜 가치가 생깁니다. 광사태 나노입자는 정확히 그런 구조입니다. 세포 한 개(약 60마이크로미터 크기) 내부에서 이동하는 장면을 실시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세포 이미징, 즉 생체 내 초고해상도 현미경 프로브로 쓸 수 있습니다. 기존 MRI 조영제보다 훨씬 작고 정밀한 분자 수준의 조영제가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라이다(LiDAR) 센서에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이다란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물체의 거리와 형태를 3차원으로 측정하는 장치로, 자율주행의 '눈' 역할을 합니다. 광사태 나노입자처럼 아주 약한 빛에도 반응하는 소재가 들어가면 에너지 효율과 감도가 동시에 향상될 수 있습니다.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적외선 대역을 가시광선으로 전환하는 효율을 높이는 데 응용될 수 있습니다.
연구를 가능하게 한 또 다른 핵심은 장비였습니다. 서영덕 박사팀은 기성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 분광기, 광학계를 직접 조립해 세계 최초 수준의 단일 나노입자 라만 현미경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제 경험상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연구팀은 남들이 측정조차 못 하는 영역을 먼저 봅니다. 이건 데이터 싸움에서 결정적인 우위입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보면, 광사태 나노입자를 폴리스티렌 마이크로비드 표면에 코팅한 마이크로레이저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이 레이저를 체내에 삽입해 표적 치료와 진단을 동시에 수행하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즉 치료와 진단을 한 번에 구현하는 기술로의 발전이 목표입니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AI가 분자를 설계하고 이런 나노구조가 전달체 역할을 맡는 구조가 되면, 제가 관심을 가진 AI·바이오·반도체 세 축이 실제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이게 됩니다.
◆ 요약 : 광사태 나노입자는 세포 이미징·라이다·태양전지·신약전달을 동시에 건드리는 원천기술이며, AI·바이오·반도체 융합의 실질적인 접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광사태 현상이 기존 업컨버전 나노입자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일반 업컨버전 나노입자는 들어오는 빛 에너지를 선형적으로 변환하는 데 그칩니다. 반면 광사태는 에너지가 입자 내부에서 피드백 루프를 형성해 연쇄적으로 증폭됩니다. 입력 광량이 특정 임계점을 넘는 순간 폭발적으로 신호가 터져 나오기 때문에 감도 자체가 다른 차원입니다. 이 비선형성이 센서와 이미징 응용에서 핵심 강점이 됩니다.
Q. SERS 기반 라만 분석이 실제 진단에 쓰이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A. 원천기술 자체는 이미 증명됐지만, 임상 적용까지는 생체 안전성 검증과 대량생산 공정 확립이 선행돼야 합니다. 제가 바이오 투자 쪽에서 본 경험으로는, 이런 종류의 나노소재가 전임상에서 임상 1상까지 가는 데 보통 5~10년은 잡아야 현실적입니다. 다만 체외 진단(in vitro) 분야는 규제 장벽이 낮아 훨씬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습니다.
Q. 한국이 이 분야에서 중국이나 미국을 이길 수 있을까요?
A. 전선 전체에서 이기는 건 어렵습니다. 다만 한국은 반도체 공정 기술과 바이오 생산 인프라가 결합된 독특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노입자 합성 → 정밀 코팅 → 대량 생산이라는 흐름에서 삼성·SK 계열의 공정 노하우가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합니다. 원천기술 하나에 집중하면서 제조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리합니다.
Q. 분자 나노기술 관련 투자나 공부를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봐야 하나요?
A. 저는 크게 네 갈래로 나눠 보는 것을 권합니다. 나노의약(약물전달), 초고감도 진단 센서, DNA/RNA 나노구조, 그리고 단분자 전자소자입니다. 각각 상용화 속도와 규제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 묶음으로 보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기술 동향은 Nature Nanotechnology나 ACS Nano 리뷰 논문을 정기적으로 훑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습니다.
결론
서영덕 박사의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과 자체보다 그 성과가 나온 구조였습니다. 장비를 직접 만들고, 5년의 압박을 버텨내고, 아무도 보지 못한 현상을 자기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 그 과정이 광사태라는 개념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에너지가 임계점까지 쌓여야 한 번에 터진다는 것.
기술적으로 정리하면, 라만 신호의 균일 증폭과 광사태 현상의 나노 단위 증명은 분리된 성과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분자를 프로그램하고, 분자가 내는 신호를 읽고, 그 신호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수행하는 시스템. 지금 당장 대량생산되는 제품은 아니지만, 향후 10~20년 안에 의료·AI·반도체를 연결하는 기반기술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제가 이 분야를 계속 주목하는 이유입니다.